윤채영(34)은 얼마 전 경기도 용인의 기흥으로 이사를 했다. 기흥은 ‘골프 8학군’으로 불릴 정도로 연습 환경이 좋은 지역이다. 일본여자프로골프(JLPGA) 투어가 주 무대인 윤채영은 사실 원래 살던 서울 집에서 생활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. 이사는 동생들을 위한 선택이었다. 11살 어린 남동생, 13살 어린 여동생이 모두 1부 투어 진입을 노리는 프로 골퍼다.
최근 만난 윤채영은 “새 집에서 짐 정리는 제 몫이고 곧 일본으로 넘어가는 제가 제일 작은 방을 쓴다”면서 “그래도 골프 하기에는 최고의 환경”이라며 동생들의 활약을 기대했다.
윤채영은 이달 10일께 일본으로 출국해 3월 첫 주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021시즌 개막전에 출전한다. 벌써 1부 투어만 16번째 시즌이다. 2006년 한국여자프로골프(KLPGA) 투어에 데뷔한 윤채영은 단 한 번의 2부 투어 강등도 없이 롱런 중이다. ‘미녀 골퍼’보다 ‘베테랑’ 수식어가 익숙해진 그는 “얼마 전 광고 촬영 현장에서 만난 한국프로골프(KPGA) 투어 서요섭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이를 알게 됐는데 저보다 9살 어리더라”며 “‘올해도 시드 유지하자’ ‘우승도 해보자’는 생각들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다”고 돌아봤다. 이어 “10년 차쯤 됐을 때 아버지와 후원사 감독님의 권유로 일본 무대에 도전했는데, 그게 컸던 것 같다”면서 “새 무대에 적응하다 보니 벌써 일본 투어도 5년 차가 됐다”고 말했다. 선수 생활에 지칠 무렵 완전히 환경을 바꿔 새 도전에 나섰던 것이 지금까지 경쟁력을 이어온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.
윤채영은 “일본 첫 해에는 힘든 몸을 이끌고 작은 방에 들어서면 눈물부터 나왔다. 적응은 어렵고 성적도 안 나는 시간을 반년 간 겪으니 그제야 좀 편해지더라”고 했다. 2017년 일본 투어 데뷔 이후 2019년까지 네 차례나 준우승을 차지하며 활약한 그는 지난해도 이토엔 레이디스 공동 3위 등으로 건재를 과시했다. 친동생들의 영원한 롤 모델로서의 책임감도 윤채영을 지탱하는 힘이다. 여기에 더해 일본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 간에 워낙 살뜰히 챙겨주는 분위기가 있다 보니 더 즐겁게 경쟁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.
일본 선수들로부터 받는 자극과 현지 팬들의 남다른 응원도 빼놓을 수 없다. 윤채영은 “일본 선수들을 보면 ‘나는 프로페셔널’이라는 자세가 몸에 배어있다. 경기는 물론 갤러리·스폰서를 대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다”며 “잘 할 때나 못 할 때나 모든 대회를 따라다니며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시는 나이 지긋한 팬들을 볼 때마다 힘을 얻기도 한다”고 밝혔다.
KLPGA 투어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2014년부터 줄곧 한 브랜드(야마하골프)의 클럽을 쓰는 윤채영은 골프를 외국어 공부처럼 해왔다. 날을 잡고 몰아서 하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일상처럼 골프를 놓지 않는 스타일이다. 스스로는 “‘늘어지면 뒤처진다’고 생각해서 쉬어도 확 놔버리지 못하는 ‘불안병’이 있다.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해야 마음이 놓인다”고 설명했다.
“말도 안 되게 어려운 상황에서 파 세이브를 해낼 때 ‘그래도 내가 투어를 오래 뛰기는 했나 보다’고 실감한다”는 윤채영은 “지금 당장 힘들다고 그만두면 나중에 후회할까 봐 은퇴는 아직 생각하지 않는다. 돌아서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그날까지 계속 뛸 것”이라고 강조했다. “일본으로 처음 갔을 때 ‘우승은 하고 한국에 돌아와야지’ 라고 마음먹었거든요.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.”